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Posted by 내일인화

2012. 8. 31. 22:43



 


1. 고등학교 때 미술선생님이 있다. 미셸의 모습을 가만 들여다볼 수록 그 분과 비슷하게 생긴 것 같다. 부스스한 잿빛 머리카락에 말랑하고 밀랍인형같은 느낌의 얼굴 피부. 좁으면서 뭉퉁한 코도 그렇고, 몽롱한 눈 색깔도 그렇고, 장미빛 홍조도 그렇고. 미셸은 눈이 점점 어두워졌고 미술선생님은 귀가 안들렸다. 그리고 둘 다 미술을 한다. 헐. 지금 생각해보니 미술선생님 성함도 미셸이다. 세상에. 선생님께 이 영화 꼭 보여드리고 싶다. 



미셸의 성격은 어쩌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홀리의 성격과 닮아있지만 훨씬 퇴폐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리고 거지고. 하지만 미셸은 동시에 다가지기도 했다. 남자친구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2. 제목만 보고는 비밀의 화원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아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눈살찌푸려질만큼 난잡하고 엉망이다. 여기가 어디지? 정신병동? 요양원? 수감소? "나는 보기 예쁜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린 영화가 아니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거지들의 사랑타령이라고." 라고 으름장 놓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고 예예 알겠습니다.




3. 미셸의 모델이 되어주기 위해 알렉스가 나무 밑에 자리 잡은 장면은 정말 예뻤다. 파리의 오후같은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파리의 오후 마즘) 또 미셸이 뜨거운 오후의 공원에 배를 깔고 누워 그림을 그리는 장면도 아름다웠다. 나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는 기분! 미처 끝내지 못한 그림을 삼 년 뒤 크리스마스에 그려준다는 설정도 애틋했다.  




 





4. 알렉스가 미셸에게 호감을 보이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뚱한 표정으로 해줄 거 다해주고 ㅋㅋㅋㅋㅋ감정표현에 서툰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사실 너무 선수같은 남자보다, 저런 원석같은 남자가 왠지 여자들의 로망이지 않나? ㅋㅋㅋ


둘이 술에 취한 장면은 정말이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워죽겠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프랑스 영화 특유의 난잡함이 잘 드러난듯. 수상스키씬도 멋졌고. 퐁네프다리에 사는 거지들의 사랑이야기이지만 어찌나 애틋한지.







 알렉스가 미셸이 잠든 사이 편지를 두고 가는 장면은 정말 귀여웠다.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거야" 라니 ㅋㅋㅋㅋㅋ









누가 크게 웃어달랬지 크게 키스해달랬냐....솔로 앞에서 이렇게 달달한건 범죄요 ㅜㅜ 




5. 지하철에서 첼로의 선율을 따라 뛰는 미셸과 그 뒤를 쫓는 알렉스. 이때 흘러나오는 선율은 <코다이 무반주 첼로소나타 OP.8>이라고 한다. 찢어지는 듯 높은 선율과 줄리앙을 따라 급히 지하철로 뛰어드는 미셸,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목발을 집어던지는 알렉스. 




6. 알렉스가 지하도 전체에 붙어있는 미셸의 초상화를 일제히 태우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알렉스는 미셸이 자기를 버리고 돌아가는 게 싫었을까? 한스가 미셸에게 했던 말이, 한스와 알렉스이 사는 거리의 삶은 미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나서 더 그랬던 걸까? 그렇게 말쑥하고 예쁜 미셸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저기 서울역의 노숙자들도 언젠가 저렇게 반짝반짝하던 때가 있었겠지. 











7. 영화의 마지막장면에서 두 사람은 파리야 잘자거라!!! 라고 소리치며 '르 아브르'로 떠난다. 영화 초반에 "파리만 행복한 게 아냐 더 행복한 곳도 있어."라고 말한 친구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8. 프랑스어는 들어도 들어도 기분이 좋다. 뭔가 부드럽게 굴러가는 듯한 소리. 목 뒤로 가르릉 끓는 소리. 일본어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 일본가족 옆에 한참을 서성거렸던 기억이 있다 ㅋㅋㅋ아이가 재잘재잘 얘기하는 게 어찌나 간질간질하고 듣기 좋던지. 나른하게 뒤로 빠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일본말을 듣기 위해 일본 영화를 보기엔 나와 취향이 너무 안맞는다. 나른하고 일상같은 영화는 끌릴 때는 끌리지만 보통은 음, 그닥. (굳이 말하자면 난 헐리웃 액션영화랑 멍청한 로코물을 좋아한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들을 때도 그런 기분일까? 한국말을 무의식적으로 들으면 중국말과 일본말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억세지도 않고, 너무 부드럽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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