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야간열차

Posted by 내일인화

2012. 7. 6. 16:28




야간열차! 모든 여행자들의 로망! 야간열차에 대한 환상은 할머니가 러시아 여행가셨을 때 대륙횡단열차에서 밤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칸막이 열차.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이런 워너비열차들 덕에 나는 버스여행보다는 기차여행이 더 좋다. 심지어 대중교통도 지하철이 더 좋음.(아니 이건 상관없나ㅋㅋ)

글 도입부는 왠지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변명으로 들린다. 우리는 이래서 여행을 좋아해요. 이래서 밤이 익숙해요.


작가가 판텔레이몬 수도원에 이르렀을 때 나는 글에 매혹되어 판텔레이몬에 대하여 구글링해보았다. 오와! 판텔레이몬 뿐만 아니라 아토스 전체가 성지였다. 정말 멋지다.


기차 안에서 읽었기 때문에 간혹 창밖 풍경에 대한 멋진 묘사가 나오면 나도 신이 나서 창 밖으로 눈을 돌려볼 수 밖에없었다. 비록 야간도 아니고, 한낮에 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달리는 기차지만. 시베리아의 하얀 눈벌판 위로 별이 총총박혀있지도 않지만. 여튼 러시아에서 기차로 대륙횡단을 해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로망이 생겼다.


이 책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작가와 함께 러시아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있는 기분?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고. 건장한 여자승무원들과 무뚝뚝한 주방장들과 함께 탑승한 기분? 나도 이렇게 여행기를 잘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쉬운 점은 이 책에는 너무나도 많은 다른 작품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오래도록 내 상상 속 시베리아는 거대한 감옥이자...(중략)...발렌틴 라스푸틴Valentin Rasputin의 <시베리아여 안녕Adieu a Matiora>이나 예프게니 예프투센코Evengenii Aleksandrovich Evtushenko의 <황량한 시베리아 만Lea Baies sauvages de Siberie>같은 책에 나오는 그런 시베리아. 


뭐 이런 식이다.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작가가 생각하는 시베리아가 어떤지 나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네 정신상태며 기분은 시시각각으로 달라지고,

우리는 낮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자신의 다양한 면들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그 시간을 '밤'이라고 한데 뭉뚱그려서 말하는 건 옳지 못한 것 같다.




그 열차 역시 유고슬라비아의 열차답게 제시간에 출발했다. 

그리고 역시 유고슬라비아의 열차답게 모스타르역에 예정보다 두 시간 늦게 도착했다.




왜 떠나지 못하는걸까?

왜 개들만 숲의 부름에 따르는걸까?

개보다 잘 사육된 인간이여, 자기 목을 죄고 있는 사슬을 끊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여...




시간 밖 시간 속에서 행동은 점점 더 굼떠지게 마련이었다.




신은 아마도 지치고 지쳤을 때, 그러니까 창조력이 완전히 바다났을 때 

러시아 평원을 만들었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런 순간은 오게 마련이니까.




시오랑은 지루하다는 건 "시간을 씹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만큼 이가 얼얼하도록 씹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제 곧 나는 비행기를 타고 왔던 길을 되짚어 날아가리라.

열차로 꼬박 보름이 걸렸던 길을 그렇게 열두시간 만에 가로지르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