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거의 모든 것들의 신

Posted by 내일인화

2012. 6. 7. 03:28


인도에 가 본 사람도 많고, 천년 전 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도와 교류해왔다. 그리고 인도 역시 우리와 같은 아시아권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나에게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을 상징하며 보편적이지 않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곳임. 솔직히 나한테 인도! 하면 가방부터 신발까지 탈탈 털린 불쌍한 배낭여행자랑 코끼리랑 4시간 연착하는 기차 밖에 생각 안난다. 

<거의 모든 것들의 신>에서 인도는 정말 생생하게 그려져있다. 너무 생생해서 책읽으면서 인도안가본 걸 다행으로 여기게 됨. 난 죽기싫어. 뭔가 우리나라의 70년대가 그려진다. 시기적으로는 1969년, 공산주의 폭동이 확산되어 전통적 카스트 제도를 뒤흔들며 두려움이 고조되는 가운데 일어난 두 주일간의 이야기라는데 왠지 To Kill a Mockingbird 랑 모티프(?)가 겹치는 것 같았다. 불가촉천민이라서 맞아죽었다. 막내 코차마 미워.

쌍둥이 좋다. 나도 쌍둥이였으면 좋겠다. 기억을 공유한다는건 진짜 멋있는거 같다. 물론 나한테 멋있는 기억이 있다는건 아니지만. 하긴 나라도 내 기억은 공유하기 싫겠다. 됐어 난 남동생으로 만족할란다. 

책을 읽다보니 영국인들에게 아첨하는 친영파(이런말이 있나..?), 남성우월적인 가부장제의 폭력, 모든 문제의 근원인 카스트제 등이 풍자된 것 같다. (인도 요즘도 이래?) 특히 불가촉천민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다니 ㅠㅠㅠ불가촉천민이 원빈처럼 생겼으면 어쩔 ㅠㅠㅠㅠㅠㅠ인적낭비임..

둠둠 거리는거 너무 남발하는 거 같아서 읽다보니 거슬렸다. 그리고 전반부를 읽을 때 이 책 특유의 미래와 과거를 왔다갔다 거리는 구성이 너무나도 헷갈려서 읽다 그만둘 뻔 했다. 인도식 이름들 역시 잘 안외워졌다. 하지만 읽다보니 전반부의 내용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고, 장을 넘길 수록 익숙해져서 괜찮았다. 뭐 인도느낌도 나고 좋네. 

여튼 밝고 판타지스러운 분위기는 아니고 오히려 담담하고 너무 현실적으로 서술되서 읽는 동안 즐거운 책이었다. 물론 난 동화가 더 좋다. 



 


라헬은 계속해서 만일 로프가 끊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해 보았다. 
페인트공이 자기가 만든 하늘에서 어두운 별처럼 떨어져내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달아오른 교회 바닥에 죽어 널브러진 그의 머리통에서 시커먼 피가 비밀처럼 흘러나오는 모습을. 



코추 마리아의 웃음에는 때때로 어린아이들의 웃음에서나 볼 수 있는 잔인함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 말이다, 얘들아. 우리가 지금 어떻고 나중에 어떻게 되건, 
그건 모두 지구 여자의 눈이 반짝 빛난 것에 지나지 않아.」



생강 제후들, 커피 백작들 그리고 고무 남작들은 
자기네들의 고립되고 뚝 떨어진 영지에서 시내로 내려와 선상 클럽(sailing club)에서 
차가운 맥주를 홀짝이며 잔을 들어 건배했다. 



온 주위가 해야 할 생각과 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런 때에는 오직 작은 것들만이 입 밖에 내어진다. 
큰 것들은 말해지지 않고 마음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사정은 단 하루 만에도 변할 수 있다.




귀퉁이가 남아돈다면 그들은 자신이 죽어나갈 귀퉁이를 선택할 수 있을까?




아무는 그 입맞춤이 해맑은 것에 놀랐다. 
그것은 열정과 정욕으로 흐려지지 않은 유리처럼 맑은 키스, 
상대방이 같이 키스해주기를 바라지 않는 키스였다.



그 비좁고 무더운 방이 너무나 많은 야망으로 채워져 있었다. 
필라이 동지가 커튼을 친 책장 안에 보관해 둔 것이 무엇이건, 

망가진 모형 비행기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삶이 시작되기 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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